동역자 여러분께!
왜 울게 하셨는지는 모릅니다.
사실은 울어야 하는 이유도 몰랐던 저 이었음에도 고백합니다.
나이가 너무 어렸으니까요.
일곱 살부터였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같이 울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울었습니다.
저는 해방되는 해에 태어나 그 사건들을 들으며 새기면서 자라났습니다.
물론 들려주는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계속 당하면서 살아남은 민족임을 저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이 민족을 위해 어머니는 늘 무릎을 꿇고 울며 기도하셨고,
제게도 그 기도를 전수해 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성경을 배웠고, 그 무릎을 꿇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저 따라서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억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얼마동안은 자유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무릎꿇지 않아도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저는 돌아와야 했습니다.
어머니처럼 무릎을 다시 꿇었습니다.
다니엘을 기억했습니다. 모세를 상기시켰습니다. 바울을 생각해 냈습니다.
기도의 사람이었던 존 낙스를 알게 하신 어머니를 기억하며 저는 무릎을 다시 꿇기 시작했습니다.그러고 보니 올해로 제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왜 그렇게 나라와 민족만 생각하면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나라와 민족만 생각하면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슬퍼했어야만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왜 울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무릎만 꿇으면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소리를 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께 매어 달리며 울었습니다.
결사적으로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줄로 알아 울었습니다.
억지로 어떻게 눈물을 흘립니까?
그러나 그저 나라 생각만 하면 울어야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괴로웠습니다.
내 민족을 살려달라며 몸부림쳐 울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제 마음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그렇게 기도하도록 명령하시는 것을 감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은 저와 저의 형제들을 미국으로 이민을 시키셨습니다.
한국을 떠나는 날 제 옆에 앉아있던 공무원 한 분이 포항 하늘을 지나는데
"청년! 청년이 볼 수 있는 조국의 마지막 모습이요!"라고 말했을 때 저는 그 분이 미웠습니다.
저는 이민 수속 중 공무원들한테 많은 아픔을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흘깃 포항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역시 그 순간도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동안 저는 이민 생활에 적응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절절히 제 가슴에 묻어오는 그 진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민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픔이었습니다.
언어와 문화와 가정에 대한 무거운 짐들이 저로 감당하기 힘들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가슴 속 깊이 살아있는 민족애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짙어만 갔습니다.
이 아픈 마음을 가진 저를 하나님은 신학을 하게 하셨고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동족을, 민족을, 나라를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저 하나가 무엇을 하겠느냐고생각했습니다.
저 같이 어리석은 자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다만 여전히 울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그 중에도 만주요 북한인 그 땅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과
사도행전적 성령의 역사를 듣게 되었고 알려야 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살아있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현장에서 뜨겁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교하는 자리를 영광의 자리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방 땅에도 살아 있었습니다.
민족을 잊지 않고 현지 국가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지키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김치 독에다 묻어두었던
다 삭아버린 성경을 선물로 주었고, 저는 새 성경을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다 당했던 이야기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그들은 제게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오랜동안 아픔을 참아야 했습니다. 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이야기를 할 줄 몰라 옆에 앉아 있던 어느 할머니는 눈물만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교회를 돌려 받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숨겨 두었던 적은 재물을 바쳐 교회를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내어 걸레로 예배당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을 쏟아내며 교회를 정성스럽게 어루만졌습니다.
그들을 위로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찾아와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하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들의 필요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성경을 필요로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걸레질만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더 약한 자들을 돌보고 심방하며
다른 종족들에게 복음을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을 향한 그들의 조용한 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자랑하지 않으면서 힘껏 그러나 지혜롭게 사역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고 저는 그 일에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모퉁이돌 선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성경 배달이었습니다.
산과 교회당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울던 제가 이제는 강단에서 울고 있습니다.
수양관에서 함께 청년들과 울었습니다.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제가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 민족을 당신들이 살려야 할게 아니냐며
운 것입니다. 당신들이 함께 울어달라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중국을 선교한다고 시작하였지만 결국은 북한이요 한국이 목적이었습니다.
소련과 몽골을 선교한다고 하였지만 결국 북한을 들어가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스라엘을 선교하는 것도 저 하나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이 백성을 혹시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으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남한이던 북한이던 한국이던 하나님만 붙들어주시면 아니 하나님만 포기하지 않아 주시면
이 나라에 소망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 사람을 찾습니다.
이제는 북한을 위해 우는 일을 확대하여야 하는 시기에 와 있습니다.
남북화해 무드가 북한 선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왜 화해무드가 선교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정치나 통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남한을 위해서도 울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전 세계에 퍼져있는 동족을 위해서도 울어야 합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등 서구문명과 서구 언어를 자유스럽게 구사하는 실력있는 청년들이
한국인임을 자부하며 일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알고 함께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러시아에 약 75만 일본에 100만 미국에 250만 중국에 300만 그 외에 약 50만 명 이상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도 그들은 김치를 먹으며 아리랑을 부르는 한국인입니다.
우리 형제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교 동역자들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을 통해 보면 모든 사건과 역사는 우연하지 않습니다.
주 하나님의 통제와 허용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훈련이요 감당해야 할 과정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배워야 하고 이뤄야 하는 과정입니다.
좋으면 좋은대로 감사하며 이뤄가는 역사일 뿐입니다.
한 인간 인간의 모든 역사가 주님의 주관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한 나라의 상황을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바 된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리하려면 자신의 죄악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이 민족에게 주어진 이 땅을 위해 벽을 쌓는 일입니다.(원수들의 괴롭힘에서 보호받도록)
그리고 저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막아서야 합니다.(에스겔 22:1-31)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불리움 받았습니다.
이 일을 우리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내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순종하는 자를 원하시고 그 순종하는 자와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21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은 20세기의 마지막 해이지 21세기의 시작하는 해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21세기입니다. 이 말은 주님 오시는 날이 하루 한해 더 가까워 졌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울며 회개하여 중보하는 일로서 시작하십시다.
이 시대와 이 민족이 바로 우리의 무릎이 얼마나 꿇어졌느냐에 달려있는지도 모릅니다.
눈물 흘릴 자를 하나님이 찾고 계십니다.
산 제사로 드려질 자를 찾으십니다.
상한 심령을 가진 자를 원하십니다.
순종할 자를 찾으십니다.
바로 이 해에 말입니다.
2001년 1월 20일
무익한 종 이 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