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또한 알지 못하는..
그리고 앞으로 알아갈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정한 이치를 깨닫는 것에 불과하다..
어제 철야예배 설교 중에..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예수쟁이라면 대강 이해할테고 예수쟁이가 아니라면 관심 없을테니 설명은 그만두자..)
내 귀에 걸린 얘기는..
'은혜언약'이 시기적으로 '행위언약'보다 앞선다는 말씀이었다..
'행위언약'은 아담과 맺은 언약이고, '은혜언약'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인데..
'은혜언약'이 맺어진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 시점이 아니고 태초 이전이라는 것이지..
그럼 '죄'의 대가가 '사망'인 것 역시 하나님이 정하셨겠지?
'죄'의 대가가 '사망'이라고 정하신 하나님이
그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은혜언약'을 정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어쩌면..
죄의 대가가 죽음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정하기 나름 아니었을까?
하나님은 왜 그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야만했을까..
인간이 죄를 지을 줄 알았을 하나님이..
왜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정하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로 마음먹었을까..
왜 스스로 고통 속으로 뛰어드셨을까..
그는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것이 공평하기 때문에?
공평과 불공평의 정의마저 정하신 분이 말인가?
어쩌면 하나님은..
그가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상황으로 표현하신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식을 부모가 직접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그 부모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면서까지..
그 고통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