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다리는중

예수님도 침례를..?

예수님도 침례를 받았다?

마가복음 1:9~11에서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는다. (지금의 우리가 받는 침례는 물에 잠기면서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나의 옛 자아가 죽고, 물에서 올라오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나 역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났음을 나타내는 의식이다. 이는 구원에 필요한 조건이 되지는 않지만 구원받은 후 행하는 하나의 중요한 의식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육적인 죄의 혈통을 벗어나서 태어났기 때문에(성령으로 잉태) 죄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지 않은가? (그는 소년 때 이미,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냐'고 그의 부모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마가목음 1장 4절에는 요한의 침례가,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라고 한 것으로 보아 요한이 준 일반적인 침례와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럼 예수님은 왜 침례를 받았을까? 그 의미는 무얼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고난을 받지 않기를 원하셨다. 다만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해 달라고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선택하셨다.(겟세마네의 기도, 막 14:36)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하고 있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갈등하셨을 것이다. 그가 이 땅에 온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구원을 주기 위함이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갈등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선택하고 그 한 증거로 자아를 포기하기도 하는 침례를 받은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구원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구원의 기쁨 속에 받은 침례와는 조금은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제는 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겠습니다'정도면 될까?

이렇게 의미를 나누는 이유는 내 삶이 그것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기쁨에, '하나님 뜻대로 살래요'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구원받은 당시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나의 고백을 다분히 감정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내 고백은 다르다. 매일 아침.. 눈 뜨면서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먼저 생각날 때에는 무릎을 꿇고 정말 간절한 한 마디의 기도를 올리곤 한다.

"하나님.. 제발.. 제발 오늘 하루만은 내 욕심 버리고 당신 뜻대로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구원이 필요없던 예수님의 침례는 그의 선택과 결단의 증거로써의 침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포기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고 물 속에서 올라올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라고 기쁨의 탄성을 들려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예수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우셨을까..

나에게도 구원의 침례 말고 매 순간 침례가 필요하다. 때떄로 불끈불꾼 솓아오르는 내 욕심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매 순간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예수님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신다.(느껴본 사람은 알 수 있으리라.. 순종으로 인한 평안과 기쁨을..)

그래서 하나님을 좇기로 한 크리스챤들은 매일 자신을 십자가에 박는 기도를 한다. 자신의 자아,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뜻대로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든 것처럼 보이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내 뜻이란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나의 선택이 내 삶을 인도하고 나를 구원할 수 있는가..
나를 사랑해서 나를 대신해 죽음을 택한 그분의 뜻이 나를 해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이전에 우리를 옭아매고 있던 율법으로 돌아갈 것인가..

참 자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라다이서 2:20)

--------------------------

시편을 읽은 후 어디를 읽을 지 몰라서 제비를 뽑았다.. 제비는 인간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가장 성경적인 방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깨달은 말씀은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의 묵상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지금까지도 간간이 올리긴 했지만..)
그래서 마가복음의 묵상을 올린다.
이렇게 길게야, 그리고 매일이야 힘들겠지만..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한 이 글은 끊기지 않을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