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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야기

연륜..

가끔 지하철에서 나이 지긋한 어른과 싸우는 청년들을 본다..
그럴 때마다 청년은 버릇없고, 어른은 나이 값을 못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버릇없는 청년이 되었다..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 서서 무가지를 읽고 있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쉰다섯 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 투덜대는 것이다..
그냥 입 속으로 뇌는 말이라 잘 듣지는 못했지만..
하필 이 앞에서 신문을 보냐는 그런 말이었다..
나도 신경이 쓰여서 힐끔힐끔 보니 내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이 구두에 튈까 신경이 쓰이는지 연신 다리를 꼬았다 폈다 하며 은근히 내 다리를 구둣발로 찬다..

보통 사람같이 앉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을 다리 쭉 내밀고 앉아있으면서 트집이구나..
라는 생각에 갑자기 열이 받아서..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 (잘나간다.. -0-;;)

"똑바로 앉으세요.. 물도 안튀는데 왜 그러세요?" -0-;;

예상한 그대로.. 싸움 붙었다.. -0-;;
역시 아저씨는 물 튀겨놓고 뭘 잘했냐고 노발대발이고..
나는 똑바로 앉아 가시든지, 말로 하면 될 걸 왜 혼자서 욕이냐고.. 다 들었다고.. 따지고..


말다툼 하다가.. 문득 슬쩍 주위를 살펴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라는 생각을 했나보다..
아무튼 사나이 칼을 뽑았으니(?) 질 순 없어서 계속 대꾸를 해 대다가..
나도 하도 열이 받아서.. 잠시 말싸움 좀 쉬어가려고 빈정대며 사과를 했다..
사과도 아니지.. 천정을 보고 한숨 한 번 쉬고 건방진 말투로 한 마디 툭 던졌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 됐죠?"

우산을 거꾸로 쥐며 빈정거리며 한 마디 했는데..
뜻밖에 아저씨가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내가 더 미안하다고.. 오늘따라 별 일 아닌데 과민했던 것 같다고..


움찔...


그분의 진심어린 사과에 빈정대며 사과했던 내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오.. 제가 버릇없이 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서로 사과하고 악수하고..
지금 일 다 잊자고 약속까지 하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생각해보니.. 정말 별 일 아닌데 얼굴 붉혔다..
그리고 내가 잘못했다..
나는 죄를 지었다..
항상 말하듯이, 다른 사람 앞에 떳떳하게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 죄이니까..
나는 혹시 누가 보지 않나 두리번거리지 않았던가..
그것은 내 기준으로 죄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창 4:7)

선이 아닌 것은 죄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곧 죄를 짓게 된다..
내 삶에 선한 것을 멀리해서 자꾸 내 삶에 죄가 들어오는 것 같다..
내가 그 버릇없는 녀석이 되다니..



물론 힘들고 지치면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아니.. 누구나 죄를 짓는다..

그럼 세상에 악인이란 있는가..
모든 사람이 죄인인데..
힘들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죄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를 정죄할 수 있는가..
나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자신할 수 있는까..


그 아저씨는 성숙한 분이셨다..
비록 다른 사람의 화를 돋우는 투덜거림은 있었을지라도..
그저 가식적인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지 않았는가..
존경받을만한 분이다..


나는 오늘..
나이만큼 연륜이 풍부한 어르신과 맞짱 뜬..
버릇없는 청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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