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성경을 처음 읽으려는 이에게 시편과 요한복음을 권한다..
하지만 난 시편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을 또 하나 발견했다..
바로 우리 형이다..
형 블로그에 갔다가 큐티한 내용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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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9.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찌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 셀라)
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하소서
20.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 뿐인줄 알게 하소서 (셀라)
시편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하나는 내 삶 또는 생활이 선과 악의 대립각에 민감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어쩌면 같은 것일 수도 있겠는데 세상을 바라보면서 압제 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
어떻게 보면 시편 기자는 세상의 아픔과 부조리에 대해 그 만큼의 아픔과 슬픔과 분함과 원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말씀들이 마음 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고...
넘쳐나는 이슈들을 접하면서 마음이 점점 둔해지고 있는 것일까?
슬픈 일을 당해도 진심으로 슬퍼하지 못하고, 기쁜 일, 감사한 일이 와도 전심으로 기뻐하거나 감사하지 못하는 무디어진 마음은 어쩌면 사단이 이 세상에 뿌려놓은 마취제 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믿음에 견고하면서도, 선악간에 제대로 분별하여 신원하고 감사할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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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어렵다고 생각했냐면..
1. 詩이기 때문에..
난 학창시절(?)에 시를 공부하면서 단 한번의 삘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저 시험을 위해 외우긴 했어도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졸업 후 내 마음을 움직여 준 많은 시인들이 생겼거든..
이해인, 윤도현, 마종기, 정호승, 유안진, 도종환, ....
하지만 아직도 시편이 어렵다.. -0-;;
2. 다윗의 표현에 공감하지 못하기 떄문에..
다윗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참회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의인이라고 칭하며 죄인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그런데 난.. 늘상 죄 속에 빠져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나는 의인이니 날 조롱하는 죄인들로부터 건져달라는 기도를 하지 못한다..
그렇게 당당할 만큼 의인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내가 삶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죄인들 때문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보니 이건 울 형의 생각과 같을 수도 있겠다.. 선악의 대립각이 없다는..
기쁨과 슬픔에 대해 제 3자의 입장으로 보는 것은 형보다 내가 더할 걸..
어려서부터 느끼는 것은..
형은 나보다 뭘 하든 조금 더 잘한다는 것..
조금 철 들고 느낀 것은..
형은 참 복장터지게 답답한 사람이라는 것..
조금 더 철 들며 느끼는 것은..
내가 형을 참 닮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예전 어느 글에 썼던가..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우리 엄마..
두번째는 우리 형 이라고..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낮추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역설하겠지만..
교만한 나에게 보이는 그들의 행동이 경이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