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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중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요 두 어 달 동안..
주일 저녁쯤 되면 극도의 피곤함이 몰려든다..
새벽부터 나간 탓도 있겠고..
레슨이다 연습이다 노래 부르면서 에너지를 심하게 쓴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내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너무 피곤해서 기타신과 흘러간 노래들을 부르다가..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이라는 곡을 부르게 됐다..

언제나 내 이야기..

집에 돌어와서 가사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검색하다..
그 곡을 만든 최용덕씨의 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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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찬양하는 사람들 中에서 [두란노]
                                                                                최용덕 집사 간증

그 땐 참으로 겁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군대까지 갔다 온 대학생으로 한창 패기와 혈기가 넘칠 때이고,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으면서 신앙적인 열정도 상승곡선을 타고 있을 때였습니다.

매일 캠퍼스에선 사영리를 들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동료들과 열심히 한 영혼 한 영혼을 찾아 나섰고,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 '예수 사랑 '을 애타게 외치던 때였습니다. 아마도 저의 지난 생애 속에서 가장 열심 있는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민족 복음화」라는 거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기도하며, 온 세계가 나의 수중에 들어 있는 듯 자신감이 넘치고 벅찬 가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 시절 어느 날, 저는 부모님을 뵙기 위해 마침 포항집에 들렀습니다. 몇 달 만이던가요.

중고등학교 교사로 계시는 아버지께서 마침 퇴근해 집에 계셨습니다. 저를 반가워하시면서도 기분이 언짢으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그러자 아버지께서 버럭 짜증을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내, 너한테는 미안한 얘기다 만, 예수쟁이들 도대체 왜 그러냐? 원참! 여하튼 예수쟁이들 보면 화딱지가 나서! 에이잇!"

저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시는 불신자이셨습니다. 젊으셨을 때 주위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당하신 아픔과 큰 실망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혐오증이 크신 탓에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으셨고, 제가 고등학생때 기독교인이 되자 여섯 분의 삼촌들과 함께 대노하시며 당장 집을 나가라고 소리치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관절염에 걸려 온 집안의 시름이었던 제가 금식기도 끝에 깨끗이 완치되자 그 이후로 아버지께선 내놓고 기독교 신앙을 비난하진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예수쟁이들!' 하시며 화를 내고 계셨습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으셨는데요?" "에잇! 예수쟁이들 하는 짓을 보면 그냥 화만 난다! 우리 학교 동료 선생님들 가운데도 기독교인들이 여럿 있는데...... 어디 너한테 한번 물어보자. 예수쟁이들은 다 그렇게 쩨쩨하고 잘난 척하냐? 학생들 좀더 잘 가르치기 위해 연구는 안하고 쉬는 시간이나 빈 시간마다 시뻘건 성경책을 펴놓고 거룩한 척한다만, 교사들 가운데 제일 쩨쩨하고 제일 소심하고 제일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냐? 무슨 단합대회나 회식 있으면 '우린 그런 죄악의 자리엔 안 간다' 며 빠져선 자기들끼리 모여서 기도회를 하느니 어쩌는데 그렇게 도도하고 거룩한 사람들이냐? 그러면서 학교의 뭐가 잘못되었다느니 비판하고 떠드는 것은 다 그놈의 예수쟁이들이지. 난 싫어! 도대체가 싫어! 에잇!"
저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저 아버지의 그 말씀만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밤, 저는 골방에 쳐 박혀 깊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도무지 너무 화가 나고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아버지께서 분노하시며 비난하셨던 그 기독교인 교사들 때문이었냐구요? 바로 제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기독교인에 대한 깊은 편견이 있으셨던 아버지로선 동료 기독교인 교사들에 대해 얼마든지 지나칠 정도의 혐오감을 가질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기독교인 선생님들이 아니라 바로 제 자신인 것입니다.

매일 매일 뜨거운 열정으로 '민족 복음화'를 부르짖으며 캠퍼스에서 열심히 예수 사랑을 전하고 있는 제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니 이건 참으로 엄청난 모순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이 누구입니까? 바로 저의 부모님, 특히 저의 아버지가 아니시던가요?

제가 캠퍼스에서 아무리 예수 복음을 전하고 천국의 소망을 전한다 하여도 만약 저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저의 아버지께 진정으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제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모순인가 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 왔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로부터 오늘 오후 이런 말씀을 왜 듣지 못했던가요?

"오늘 내가 학교에서 기독교인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그러나 세상의 기독교인들이 다 엉터리이고 돌팔이라 하더라도 용덕아, 내가 너 사는 모습을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알겠구나, 네 삶을 보니 정말 예수 믿는 게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 알겠구나, 야 -! 나는 너 같은 진짜 기독교인 아들을 두어서 너무나 자랑스럽단다. 내가 너만 보면 예수 믿을 마음이 팍팍 생긴다. " 불도 켜지 않고 골방에 무릎을 끓고 엎드렸는데 저의 한심한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 눈물이 솟아올랐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왜 그런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너무 분하고 원통해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지 어언 6-7년.

소매치기를 1년만 따라 다녀도 명소매치기가 되고 공산주의자를 6개월만 따라다녀도 골수분자 공산주의자가 된다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6-7년간이나 따라 다닌 저의 꼬락서니가 도대체 어떤 지경인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죽여 통곡했습니다.

매일 캠퍼스에서 예수 사랑을 외치고 떠들고 다녀도 제 삶의 구석구석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때문에 제가 주위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조차도 진실 되고 흠모할 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이 얼마나 통곡할 노릇입니까?

사실상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장 확실한 증인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이 아닌가요?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혹은 자녀나 부모 형제들로부터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바깥에서 쓰고 있는 수많은 그럴듯한 종교적 타이틀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입니까? 전도왕, 명설교자, 존경받는 교회 지도자, 거룩한 사역자 , 장로, 집사, 권사 구역장, .....

한때 자식이 허랑 방탕한 어느 유명한 부흥강사 목사님을 비난하며 자식도 제대로 못 돌보면서 어떻게 양떼들을 돌보고 가르치느냐고 빈정댄 적이 있었습니다. 온 집안이 엉망인데도 장로님이라는 직분 하나로 교회에서 떵떵거리고 거룩 거룩한 척하시는 분들을 보고 손가락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고상한 기도가 왜 그렇게 메스꺼운지 견디기 어려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골방에 엎드려 있는 저의 꼬락서니가 도대체 그분들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나은 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학교에선 그럴듯한 크리스천으로 제아무리 칭찬을 받는다 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크리스천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바깥에서의 그런 칭찬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입니까? 무슨 진실성이 있는 칭찬이 되겠습니까?

해가 못되면 그저 빛을 반사시켜 주는 달 노릇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이고, 차마 예수님을 닮을 수는 없다면 같은 인생인 사도 바울이라도 닮아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더욱 원통하고 화가 나는 것은 제 속에 ' 민족 복음화 ' 니 ' 세계 복음화 '니 하는 요란한 구호와 몸부림은 있는지 몰라도 정작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픈 뜨거운 열망이나 사모함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한 종교인으로서, 교회의 일원으로서, 혹은 학생선교단체의 멤버로서 인정받고 칭찬 받으려는 열망은 있었는지 몰라도 주님을 따르는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저의 의식과 삶이 그 주님을 진정으로 닮고 싶은 열망은 없었던 것입니다.

입으로는 매일 캠퍼스에서 예수 사랑을 외치지만 내 삶의 현장인 가정에서는 그 예수 사랑을 잔잔히 비춰 주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이 어찌나 안타깝고 불쌍한지 마냥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 날 밤에 눈물로 가사를 적고 멜로디를 쓴 노래가 바로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입니다.
그로부터 어언 또 다시 7-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작정하고 나선 지 햇수로는 십수 년이 되었습니다.
그 정도의 세월이 흘렀으면 지금쯤엔 뭔가 달라도 달라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노래할 때도 되었을 것입니다 .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네" 몇 년 전, 경기도 어느 교회 성도님께서 편지를 보내 오셨는데 내용인즉 자신들의 교회에선 ' 낮엔 해처럼...'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미 자신들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도 이 노래가 교회 내에서 금지곡이라는데 가사가 너무 청승맞고 부정인데다 기껏 로마서 7장의 탄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내용이라고 이름 있는 어느 신학교 학장이시기도 한 그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일체 못 부르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런 분들의 자신에 찬 그 고백들이 부럽습니다. 저도 그런 패기 넘치는 고백으로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노래를 통곡으로 지어 부른 지 7-8년이 지난 지금에도 저는 이 노래를 여전히 탄식과 아픔으로 가슴을 치며 부르고 앉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원통한 노릇입니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 땅에서 저에게 주어진 생애가 다 끝나 가는 그 날에는 아니 숨이 넘어가는 그 시간쯤에는 제가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드디어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았노라"고 환희에 찬 고백을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 줄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없습니다 .아마도 틀림없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 앞에 가서도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힘으로는 이 땅에서 결코 손톱만큼도 예수님을 닮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압니다. 그 어떤 수양이나 참선이나 고행으로도 저는 결코 주님을 닮아갈 수 없을 것이고 , 머리털 하나만큼도 제 속에서 솟아오르는 이 욕심과 헛된 야망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는 고집이 센 백성입니다. 교활하고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위선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저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만과 완악함의 덩어리인 이 인간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처럼 더욱 뻔뻔하게 히죽거리며 이 땅에서 고개를 쳐들고 살고 있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 속에 살아 계시는 ' 예수 그리스도 ' 그분 때문입니다. 저는 제 힘으로 제 자신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지만 그분은 능히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 하나님 나라의 비밀 하나는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얼마나 닮아갔느냐의 여부로 우리의 천국입성 가부(可否)가 결정되는 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결단코 떠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어떤 방법으로든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키고 다듬어 가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제가 이 노래를 부르지만 저는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소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 예수님을 완벽하게 닮아 가진 못했더라도 , 아니 손톱만큼도 닮지 못했더라도 주님께선 저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마지막 그날까지 저를 결단코 포기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 하루에도 제가 엎드려 겸허히 간구할 수밖에 없는 한가지는 이것뿐입니다.

"예수여,나를 도와 주소서."

제가 부르는 이름 '예수!'

그 이름 속에 저의 인생의 전부가 걸려 있다는 걸 저는 압니다. 저의 영원의 삶과 이 땅에서의 삶의 전부가 말입니다.

파스칼이 "인생은 내기 거는 것이다" 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저는 '예수' 그 이름에 저의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대단히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 선택(결정)마저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을!

비록 지금도 형편없는 돌팔이 예수쟁이지만 제 삶 가운데 친히 개입하시고 저와 더불어 이 세상을 살아가시는 주님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여기 쓰인 모든 글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는 저의 고백이자 증언들입니다.

지금도 하루에 수도 없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이웃들의 가슴에 상처 입히며, 때때로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방자히 행하기도 하는 제 자신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 마디 꼭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애타는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는 이것입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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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애타게 부릅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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