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머냐..
내가 별루 안좋아하는 야곱할아버지의 열 두 아들 중에..
4번째가 유다고 11번째가 꿈쟁이 요셉이지..
뒤에 나오겠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위의 세 형들이 장자권을 잃고 유다가 장자권을 계승하게 되고..
요셉은 장자가 아닌데도 야곱이 편애했기 때문에 비스그리한 축복을 받아서.. 나중에 출애굽을 이끈 여호수아가 그에게서 나오게 되지.. 모세였나? -_-;
암튼.. 장자도 아닌 요셉의 익숙한 얘기를 읽고 있는데.. 이건 뭐.. 웬 축복?
형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리고, 이집트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으나..
창세기 39장 2,3,5절에 계속해서 나오는 말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고 그를 돌보시며, 그에게 복을 내리고 그 복은 그의 주변의 모든 것들에 미치게 하신다.
게다가 23절에서는 감옥에 들어갔는데도 동일한 복을 주신다.
왜? 왜? 요셉에게 하필?
성경엔 그 앞에 요셉이 꿈 얘길 해서 형들과 야곱에게 미움받은 얘기밖에 나오지 않는다..
창세기 39장 9절에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요셉이 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요셉이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
요셉은 그의 친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린 몸이었다.
비록 보디발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지만 그는 보디발의 종일 뿐인 것..
보디발의 아내를 거역할 경우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할 줄 알았을텐데도, 그리고 한창 청춘인 그도 정욕이 가득했을텐데도 뿌리친 이유는 하나님 뿐..
그의 상황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그는 하나님을 기억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음을..
어렸을 때 꾼 꿈이 그저 자랑스러워서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말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노예 생활 중에 계속 맘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창 40:8에서 술시중드는 관리에게,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밝히고..
창 41:16에서 이집트의 파라오 앞에서 역시, '저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꿈과 해몽하는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서 비롯됨을 인정하고 있다.
오늘.. 조급한 마음에..
뚜껑이 열리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말씀을 읽게 됐다..
주님 뜻대로 됨을 인정한다면.. 이렇게 조급하지 않았을 터..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그저 그분의 뜻에 순종해 갈 것을..